

살아오면서 삶의2부
1956년3월20일 이학년말 겨울
방학때 할머니집이 멀리
경산시 내동 말고개로
이사를 가게되었다
거리가 학교에서 너무 멀어
다닐수가 없었다
그때 진량면 보인동에 계시는
왕이모님 할머니댁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고마운 왕 이모할머님 덕택에
무사히 하양중등학교
졸업하게 되었다
1957년3월29일 경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일학년때는 우등
상도 받았다
그후 2학년2학기12월에 가정
형편상 할수 없이 학교를
중퇴하였다
나는 그때에 18살 모든 집안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행복한 날을 갖기위해 힘들어도
온갖 시름일랑 떨쳐 버리고
무학산 깊은산 골짜기에서
땔감을 마련하고 청천유원지
앞 들녘에서 김을 매고 풀을
뜯어야 하며 쉬엄없이 흐르는
금호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끼니를 이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힘든 세월이지만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물질의 재물과"
"아름답고 예쁜 옷"
"자랑스러운""고운 얼굴 모습을
갖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스스로
위로하고 그리워 하면서 정신
없이 앞만 바라보면서
그 당시에는 마을 전체가
논농사 뿐이였다
우리 집은 논농사와 사과농사를
하였다 그덕택에 주식걱정은
아니하였고 사는 것도 어느 정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본다
그동안 유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1961년11월3일 해병대에 지원하여
진해에서 3개월 동안 신병
훈련을 마치고 포항 해병대
사단에 배치 되었다
다시1962년5월15일밤에 경기도
강화도 교동도 섬 전방에
배치되여 이북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곳에서 일년동안 근무
하다가 다시 포항 사단에 배치
되여 1964년5월30일 해병대
병장으로 31개월 만기제대 해병대
군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내가 군에 근무하는 동안 아버지
께서 보증을 잘못서서 살림살이가
빚 더미로 억망이 되어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시작 경산
농림본부 농촌지도소에서 양송이
재배 자격증을 취득 하였으나
양송이 판매가 부진해 양송이
재배는 그만 두고 사과와 논농사와
가축을 키우며 열심이 하였다.
1966년1월7일[음력을사년12월16일]
이웃동내 남방동 김성수씨의 3남
5녀중 세쩨 딸(김갑숙)과 마을 어른
신들의 주선으로 전통 혼례로
새벽 해뜰 무렵 혼례식을 하였다
한가정의 가장으로 책임 지고
열심히 살기로 마음을 다지고
좀 힘이 들더라도 먼 훗날을
생각하여 나를 도울 것을 아내에게
부탁하며 함께 노력하여 열심히
살기로 다짐하였다
1966년 5월30일 경기도 수원 농촌
지도소 사과 재배 자격증을 취득
하고 전문직으로 농사일을 잘하기
위하여 마을 농어민 후계자 대표로
입소하여 신개발로 품질개선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동안 밀린 빚도 다 갚고 식량
걱정은 없이도 살 수 있었다.
1967년 8월26일
[음력 정미년 7월21일]
장남[선대]내동 본가에서 출생
자식도 생겼으니 더 허리띠를
졸라 매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
하였고 나에게는 배다른 형제
5명의 동생이 있었다
새 어머니와 나와 의견이 맞지안아서
하는수 없이 분가하기로 하였다
1968년 2월10일 마을에 조그마한
한옥 집을 구하여 할머님과 같이
분가하여 살았다
이듬해에 1969년 1월20일 주택이
농사 짓기에는 부족하여 넓은
대지면적 120평[일십이만오천원]
구입하여 "논농사" 사과농사
소, 돼지, 토끼, 닭" 짐승을 키우며
할수 있는 일을 무엇이던
하면서 살았다.
2012년 1월 24일
차돌 이광열작성
살아오면서 3부에계속
생활의 지헤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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